태어날 때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유진'이라는 예쁘지만 흔한 이름이다.
자라면서 꼭 나랑 이름이 같은 아이들이 학년에 몇 명씩 있었고 성까지 같은 사람도 종종 만났다.
독특하고 멋진 이름을 가졌다면 좋았겠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작년, 2019년 11월 나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다니던 출판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새로운 이름도 함께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다.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해 세운 기준은 세 가지.
첫째, 늘상 바뀌는 시류에 편승한 이름은 지양할 것.
둘째, 버터 냄새 풀풀나는 서구적인 이름보다는 한국적인 이름을 고수할 것.
셋째, 가족들이 선물해준 이름을 기반으로 할 것.
새로운 이름을 짓게 된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내 영문이름은 유진의 '진'을 이름으로 가져온 Jean Chung인데, 한글로는 '진청'이라고 읽힌다.
'진청', '진청' 중얼거리던 내게 마침 눈에 띈 건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진청색 동양화 안료였다. 진청색은 짙은 파란색을 의미하는데, 파란색을 좋아하는 내게는 가장 먼저 동나는 색의 안료이기도 하다. 사실 색채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의미는 인간이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파란색은 내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색이다.
파랑은 청량한 색이면서도 우울한 색이고, 가벼운 색이면서도 무거운 색이다. 파란색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가히 넓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내가 사용하는 파란색의 대부분은 스펙트럼의 어두운 쪽에 속하는 파랑이다. 그렇기에 '진청'이라는 이름은 내 그림세계와도 맞닿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작가명을 세우는 기준 세가지를 충족하는 이름이 나왔고,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짙은 파랑이라는 뜻의 진청(眞靑).
앞으로 백일간 적어나가려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산다는 여정에 관한 것이다. 머리카락 하나 차이로 일기보다는 조금 더 공적인 글이 되겠지만, 허심탄회하게 쓴 나의 문장들이 안정적인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사람들,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예술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과 위로를 선물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2020년 9월 1일, 파란색 짙은 여정을 시작하는 문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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